[토요일에 만난 사람]공연 앞둔 서태지가 믿고 마이크 건네받는 단 3명… 음향담당, 매니저, 이 남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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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경호 23년’ 책으로 펴낸 김성태 대표

국내 민간경호의 역사를 새로 쓴 ‘서태지의 남자’, 김성태 TRI인터내셔널 대표를 서울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거울을 볼 때마다 ‘내가 오늘 현장 안전을 완벽하게 책임질 리더인가’를 의심한다고 했다. 수많은 관중 속에 섞였을지 모르는 위험인물을 찾는, 그 매의 눈으로.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국내 민간경호의 역사를 새로 쓴 ‘서태지의 남자’, 김성태 TRI인터내셔널 대표를 서울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거울을 볼 때마다 ‘내가 오늘 현장 안전을 완벽하게 책임질 리더인가’를 의심한다고 했다. 수많은 관중 속에 섞였을지 모르는 위험인물을 찾는, 그 매의 눈으로.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서태지는 비행기에서 늘 창가 자리에 앉는다. 그의 옆자리에는 늘 같은 사람이 탄다. 이 사람은 늘 앉자마자 시원한 몸짓으로 신문부터 펼친다. 안쪽에 앉은 서태지의 얼굴이 바깥에서 전혀 보이지 않도록, 넓고 크게. 그는 민간경호업체 TRI인터내셔널의 김성태 대표(46)다. 1993년부터 현재까지 서태지 경호 전담. 23년째다. 2002 한일 월드컵, 여수세계박람회를 비롯해 국가 대형 행사 안전도 그와 TRI가 맡았다. 나훈아, 패티김, H.O.T., 싸이, 빅뱅, 박진영, 김연아, 플라시도 도밍고, 딥 퍼플, 메탈리카, 루치아노 파바로티, 메릴린 맨슨, 존 F 케네디 주니어, 브리트니 스피어스, 빌 게이츠, 거스 히딩크, 매직 존슨, 엘턴 존,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콘서트, 스포츠 행사, 축제를 포함해 1만 명 이상 운집한 대형 행사의 경호를 2500회 이상 진행했다. 19년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의 경호와 안전을 책임지며 한국프로축구연맹 안전자문위원으로 활동해온 김 대표와 TRI는 국내 민간 경호의 역사다. 》
한 올 예외 없이 멀끔히 붙여 올린 진검은색 올백머리, 눈에 띄게 짙은 눈썹에 시원한 용모, 고대 석상처럼 다부진 체격. 최근 서울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김 대표는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과 예의 바른 인사로 기자를 반겼다. 3년 5개월 전, 그러니까 서태지 데뷔 20주년이던 2012년 3월에 기자는 그를 처음 만났다. 그때 “경호의 제1원칙은 ‘서태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의심하라’”라는 그의 말이 뇌리에 남았다. 지난해 10월 서태지 9집 발표 기자회견 때 잠깐 인사를 나누곤 10개월 만인데, 그는 한결같다.

이번엔 그의 손에 책이 한 권 들려 있다. “제일 먼저 드리고 싶었어요.” 주황색 글씨의 제목. 길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뜨겁고 진실한 헌신, 경호’(380쪽·1만3800원·가연). 표지엔 꽉 찬 두 사람의 얼굴. 선글라스를 낀 서태지, 그 오른편 반 발짝 뒤에 김성태 대표.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없다면 나타나지도 마라’란 광고 카피. 기억하세요? 2003년 KTF 핌 광고 촬영 때 기록사진이에요.” 김 대표가 쓴 첫 대중서다. 그런데 표지에 서태지 얼굴이 그의 얼굴보다 더 크다. “저는 이게 더 좋은데요. 서태지 씨가 갖고 있던 사진을 직접 다 뒤져서 보내준 사진이에요. 너무 고맙죠.” 서태지가 누군가의 책 표지에 추천사를 써준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23년간 가장 뜨겁고 진실한 헌신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보여주신… 우리에게 슈퍼맨 같은 김성태 실장님∼… -음악인 서태지’

2003년 일본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서 KTF 핌 광고 촬영 당시 서태지(앞)와 김성태 대표. 서태지 제공
2003년 일본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서 KTF 핌 광고 촬영 당시 서태지(앞)와 김성태 대표. 서태지 제공
서태지 팬이라면 놓쳐선 안 될 책이다. 늘 그의 옆구리를 책임지는 단 한 사람의 시점에서 서태지를 관찰할 수 있다. 물론 그 시점은 매 같은 경호의 눈이지만. 1993년, 공연장에서 의뢰인 서태지를 처음 만났던 인상부터 2000년 8월 29일 김포공항 서태지 귀국 때 퇴로 확보 작전, 서태지와 김 대표의 몽골 초원 여행까지 시공간을 넘나든다.

특정 가수의 팬이 아니라도 충분히 흥미진진하다. H.O.T.부터 딥 퍼플, 코비 브라이언트까지 국내외 다양한 스타 경호 뒷이야기, 직업으로서의 경호원 이야기, 판교 환풍구 사고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안전 전문가로서의 시각도 담겼다. 저자의 문장은 그의 머리스타일처럼 화려하지 않되 엄밀하고 다정하다. 국가적인 안전과 재난 매뉴얼 확립 같은 거시적 제안도 짚고, ‘경호원은 왜 항상 VIP의 차 모퉁이에서 이어폰 꽂고 뛸까’ ‘경호원 가방엔 뭐가 들었을까’ 같은 궁금증을 해결할 수도 있다.

김 대표의 이력은 스물세 살 때이던 1992년, 세 명의 친구와 3층 건물 옥탑방에 사무실을 차린 것으로 시작한다. 상호는 ‘트라이 경호 안전’. ‘트라이’에는 전문용어인 ‘삼선 경호’와 ‘천, 지, 인’ 삼재의 이상적 조합이라는 중의를 담았다. 한국에 민간경호 역사를 열겠다는 뜻은 창대했지만 쉽지 않았다. 직접 만든 경호 기획안을 들고 영업사원처럼 광고사와 연예 기획사를 찾아다녔다. 허탕 치고 복귀한 사무실은 키 180cm 넘는 장정들이 고개를 당당히 들기엔 너무 낮은 천장을 지닌 비좁은 공간. 일이 없으니 옥상 마당에 펼친 탁구대에서 애먼 탁구공만 치다 돌아가는 날도 많았다.

해외 자료를 토대로 경호 매뉴얼을 만들고 공부와 훈련, 영업에 정진한 덕에 ‘트라이’는 미술 전시관 야간경비, 작은 공연장 안전관리부터 규모를 늘려 갔다. 1993년 말, 마침내 일은 일어났다.

“1992년이면 저도 한참 ‘스키드 로’ 같은 록 밴드 음악을 좋아하던 때였어요.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를 듣고 완전히 빠졌죠. 이듬해 어느 날, 사무실로 그들의 공연기획을 맡은 서울기획 이태현 대표가 전화를 해왔어요. 서태지와 아이들의 전담 경호를 맡길 사람이 필요하다고요. 안 믿겼죠.”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콘서트를 준비 부족 상태에서 치르며 혼란을 겪은 서태지의 손이 김 대표에 닿은 것이다. “공인에게 민간경호가 투입된 국내 첫 사례예요. 의뢰를 받고 서태지와 아이들에 꼭 맞는 매뉴얼을 만들기 위해 보름밤을 새우다시피 했습니다. 당시 타자기보다 좀 나은 수준의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로 30쪽짜리 자료를 만들었어요. 부담감은 대단했지만 이 사람(서태지)을 하면 회사가 일어나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완벽 경호로 김 대표는 서태지가 옆구리를 선뜻 내주는 사람이 됐다. ‘서태지가 사용할 마이크를 손에 쥘 수 있는 사람은 딱 세 사람으로 한정돼 있다. 무대를 모니터하고 관리하는 음향 엔지니어와 매니저, 그리고 나다. 이 세 사람이 주는 마이크가 아니면 절대 받지 않는 것으로 서태지와 약속이 돼 있다.’(본문 59쪽) 누군가 악의를 품는다면 마이크도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큰 행사를 숱하게 진행했지만 압사 사태가 나기 직전까지 갔던 대형 공연장 사고만 세 번을 직접 겪었다. 그 탓에 아직도 ‘디데이’ 전날 밤엔 현장에서 참사가 나는 악몽을 자주 꾼다”고 했다.

“현장은 살아 꿈틀대는 생물입니다. 사전 정보 활동을 완벽히 해 100가지 위험 요소를 체크해 뒀다고 해도 현장에서 무엇이 돌발적으로 발생할지 모르죠. 큰 행사가 닥치면 며칠 동안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해요. 당일 아침에 넥타이는 한 번에 매야 한다는 징크스도 있습니다. 샤워할 때 거울에 제 얼굴이 비치면 ‘내가 오늘 지휘자로서의 자질이 있나’ 또 한 번 의심하죠. 현장으로 운전해 가면서 머릿속으로 수천 개의 문제점 체크리스트를 처음부터 다시 돌리죠. 현장에 도착하기 직전까지도 현장에 가기 싫어요. 주차장 입구에 도착해 관리자의 ‘대표님 들어가십니다!’ 무전 소리를 들으면 그제야 어쩔 수 없이 ‘내가 왔구나! 자, 시작이다!’ 해요. 가면 갈수록 행사가 두려워요. (위험요소가 갈수록) 더 많이 보이니까요.”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고현정을 지킨 과묵한 경호원 이정재, 영화 ‘보디가드’에서 휘트니 휴스턴에게 날아든 총탄을 몸으로 막은 케빈 코스트너…. 보디가드에 대한 판타지는 현실에서 어디까지 유효할까.

“‘보디가드’는 서너 번 봤습니다. 현실감이 없어요. 의뢰인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그의 심리적 강건함은 100점짜리지만, 사전 정보 수집 등 안전 확률을 높이는 활동 측면에서 보면 0점이에요. 의뢰인의 목숨을 자기 것으로 대신하는 것은 경호원으로서 최후에 선택해야 할 행동입니다.”

그는 최고의 경호 영화로 ‘사선에서’(1993년)를 꼽았다. 그 영화를 그는 10번쯤 봤다고 했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 현장에 투입된 뒤 임무 실패에 대한 죄의식에 괴로워하던 비밀 요원 프랭크(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또 한 번 대통령 경호를 맡는 이야기. “경호원의 신체적 능력은 20∼40대가 최고죠. 영화 속 이스트우드는 고령이지만 끊임없이 파고드는 정보 수집으로 용의 선을 좁혀 나갑니다. 풍부한 경험에서만 나오는 직관을 잘 활용하죠.”

책은 아이돌 그룹에 푹 빠진 청소년과 그의 부모에게도 시사점을 던진다. 요즘은 일반화돼 있는 대형 공연장에서의 스탠딩(서서 관람) 공연 안전관리도 김 대표가 국내 최초로 맡았다. 2000년 6월 미국 록 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내한공연이었다. “격렬한 슬램이 동반될 수밖에 없는 공연 문화를 위해 당시 호주에서 적잖은 돈을 주고 공연장용 바리케이드 120세트를 수입했습니다.” 이 바리케이드는 3개월 뒤 또 다른 공연에 쓰인다. 그가 여전히 ‘0909작전’이라 부르는 2000년 9월 9일 서태지 ‘울트라맨이야’ 컴백 콘서트다. 그는 “7월 안산밸리록페스티벌의 과잉 경호 논란은 행사를 구성하는 모든 참가자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기능을 사용해 최선을 다해 이벤트를 향유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기본원칙을 무시했기에 생긴 일”이라고 했다.

“부모님들이 아이를 공연장에 보내기 전에 체크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아이 티켓에 좌석번호가 ‘스탠딩 A구역 1번’으로 나와 있다면 주의하셔야 하죠. 관객들의 신체 압박이 가장 심한 모서리 부분이거든요.”

김 대표의 집필 결심에는 세월호 참사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사회적 재난의 안전환경 개선을 위한 연구’(2013년 경기대 대학원 산업보안학과 석사논문)를 비롯해 여러 편의 안전 관련 논문을 발표해온 그는 세월호 사건을 보며 학계가 아니라 대중을 상대로 안전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낼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너무 미안했어요, 아이들에게. 늘 콘서트에 가면 마주치는 청소년 팬의 눈빛들….” 그는 네 자녀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다 내 새끼들이잖아요. ‘어른으로서 뭘 했나, 소위 안전 전문가란 놈이 이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걸까’ 자책이 들었죠.”

김 대표는 “안전 매뉴얼은 교수나 전문가의 책상에서 작성되면 결코 안 된다”고 했다. “‘선장이 배와 함께 장렬히 바닷속에 수장됐다’ 그건 책임감이 아닙니다. 국가원수든 선장이든 준비돼 있지 않은 책임감은 책임감이 아니죠. 국민 보호를 위해 사전에 얼마나 많은 소통과 관리, 훈련과 예방활동을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준비는 앉아서 하는 게 아닙니다. 일본은 간토대지진 이후 재난 대책의 모든 것을 현장 중심으로 바꿨습니다.”

안전사고는 백이면 백, 이벤트 전 잠재된 수십 가지 사전 위험요소가 한번에 결합할 때 발생한다고 그는 말했다. 김 대표는 여러 차례 논문을 통해 국내 주요 안전사고를 면밀히 분석했다. “2005년 경북 상주 방송 콘서트 녹화 현장 사고(서로 먼저 입장하려는 관객이 뒤엉키며 11명 사망, 70여 명 부상)의 경우, 27가지 위험 요소가 당일 빵 터진 겁니다. 작년 판교 환풍구 사고도 마찬가지죠.”

김 대표에 따르면 콘서트의 경우, 관객층이 10대일 경우 특히 위험한데 10대와 60대 이상이 함께 오는 경우가 가장 위험하다. 입장이 무료일 경우, 그것도 선착순 무료 입장일 경우 사고 확률은 폭증한다. “상주 행사는 밤에 열렸고 입장객 대기 동선은 경사면이었죠. 출입구 개폐 관리 문제도 있었습니다. 사전에 대비해야 했지만 놓친 위험요소가 한둘이 아니죠.”

경호원으로서 그의 최종 목표는 우리나라의 모든 공연장과 다중시설에 맞춤 안전 매뉴얼이 제작·비치되도록 돕는 것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인데 다들 모른 체하고 있는 것일지 모르죠. 혼잡이 가중될 만한 전국의 모든 행사장에 꼭 그 장소에 맞는 매뉴얼을 비치해야 합니다. 힘이 닿는다면 그 일을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습니다. 그래야 이 일 해서 지금껏 밥 벌어 먹은 것, (세상에) 갚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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